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헹가래 투수 (문단 편집) ==== [[KBO 리그]] 헹가래 투수 관련 이야깃거리 ==== * [[KBO 리그]] 헹가래 투수 최다 경험자는 '''[[오승환]]의 5회'''(2005, 2006, 2011, 2012, 2013)이며, 그외에 2회 이상 헹가래 투수를 경험해본 선수로는 [[선동열]](4회 - 1986, 1989, 1991, 1993), [[김광현]](3회 - 2010, 2018, 2022), [[정민태]](2회 - 1998, 2003)가 있다. [[채병용]]은 2008년과 2009년에 마지막 투수로 마운드에 있었으나 2009년에는 헹가래 투수가 아닌 '''끝내기 홈런을 맞은 [[허용투수]](...)'''였다.[* 2002년의 [[최원호]]와 함께 유이하다.] 그 외에는 모두 1번씩밖에 경험하지 못하였다. * 헹가래 포수 최다 경험자는 '''[[진갑용]]의 6회'''(2005, 2006, 2011, 2012, 2013, 2014)이며, 그 다음이 [[박경완]]의 5회(1998, 2000, 2007, 2008, 2010), [[김무종]](1983, 1986, 1987)과 [[장채근]](1988, 1989, 1991), [[김동수(야구)|김동수]](1994, 2003, 2004), [[양의지]](2015, 2016, 2020)가 각각 3회씩을 경험하였다. * 헹가래 배터리 최다 경험 조합 역시 '''[[오승환]]-[[진갑용]] 배터리의 5회'''(2005, 2006, 2011, 2012, 2013)이며, 그 다음이 [[선동열]]-[[장채근]] 배터리가 2회(1989, 1991) 경험하였다. * 준우승팀 선수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2회 이상 우승 [[허용투수|허용타자]]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다만 '''마지막 타자'''는 [[마해영]]이 2회를 기록하였고[* 2001년 마지막 타자로 나와 삼진을 당하며 우승 허용타자가 되었으나(...) 그 상대는 진필중인데 2006년 이 둘은 LG에서 나란히 만나게 된다. 이듬해인 2002년에 우승을 확정짓는 '''끝내기 홈런을 쳤다!'''] '''허용선수'''는 [[정상호]]가 2회를 기록하였다(...).[* 2009년 [[나지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으며 허용포수를 기록하였고, 2년 뒤인 2011년에 마지막 타자로 나와 3루수 땅볼로 아웃되며 허용타자를 기록하였다(...)] 이외에도 [[이만수]]와 [[박세혁]]은 헹가래 포수와 허용타자를 둘다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만수는 1985년 헹가래 포수와 1993년 허용타자, 박세혁은 2019년 헹가래 포수와 2021년 허용타자. 다만 1985년의 이만수는 당시 통합우승으로 확정짓는 헹가래 포수라서 한국시리즈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는 한국시리즈 헹가래 포수가 아니긴 하다.] * 전문 선발투수[* 선동열, 구대성같이 정규시즌때도 선발과 마무리를 왔다갔다한 선수 제외]가 한국시리즈의 마무리의 상징성을 위해 등판해서 세이브를 따낸 사례는 [[김광현]]이 [[2010년 한국시리즈|2010년]], [[2018년 한국시리즈|2018년]], [[2022년 한국시리즈|2022년]] '''무려 세 번'''[* 김광현이 KBO 커리어에서 세이브를 기록한 건 이 세 경기가 전부이며, 정규시즌에서의 세이브는 2020시즌 MLB 데뷔전에서 처음 기록하였다.] 기록하였고, [[권명철]](1995), [[정민태]](1998), [[임선동]](2000), [[채병용]](2008), [[양현종]](2017)이 각각 1회씩 기록하였다. 이중 마지막 1이닝만 막아낸 것은 채병용(2008), 양현종(2017), 김광현(2018)이 있고, 1이닝 미만을 막아낸 사례를 포함하면 김광현(2022, 0.2이닝)의 사례가 하나 더 있다. * 2개 이상의 서로 다른 구단 소속으로 헹가래 투수를 경험한 선수는 없으며, 포수는 김동수[* 1994년에는 LG 소속, 2003년과 2004년에는 현대 소속으로 헹가래 포수 경험]와 박경완[* 1998년과 2000년에 현대 소속으로, 2007, 2008, 2010년에 SK 소속으로 헹가래 포수 경험]과 [[양의지]][* 2015, 2016년에 두산 소속으로, 2020년에 NC 소속으로 헹가래 포수 경험]가 있다.[* 김동수와 박경완 그리고 양의지는 우승시즌에 한번씩은 골든글러브 수상을 했었다. ] ---- * 우승 당시 타구[* 편의상 삼진도 포함한다.]는 '''삼진이 11회'''(헛스윙 삼진 7회, 루킹 삼진 4회), '''뜬공이 14회'''(중견수 5회, 우익수, 2루수가 3회씩, 포수, 3루수, 좌익수가 1회씩), '''땅볼이 14회'''(투수 5회, 유격수 4회, 2루수 2회, 1루수 2회, 3루수 1회), '''라인드라이브가 1회'''(1루수 1회), '''끝내기 홈런이 2회'''(좌중간 솔로홈런 1회, 우측 솔로홈런 1회)였다. 이 중 병살타로 우승을 확정지은 경우는 2회[* 2003년 6-3 병살, 2008년 1-2-3 병살]이며, 번트 타구 아웃(...)[* 1985년 통합우승 확정 당시 롯데의 [[한영준]]이 기습번트를 시도했으나 그대로 아웃되고 말았다.]으로 우승을 확정지은 경우도 1회있다. * 삼진 아웃을 제외하고 우승 확정 타구를 가장 많이 처리한 야수[* 편의상 타구를 직접 받은 야수만 기록. 예를 들면 6-4-3 병살타에서 유격수-2루수-1루수가 모두 수비에 관여하지만 해당 상황에서는 최초로 타구를 처리한 유격수만 카운트한다.]는 [[이숭용]][* 1998년에 중견수 플라이 아웃, 2004년에 1루수 땅볼 아웃을 처리함.]과 [[박한이]][* 2012년과 2014년에 각각 우익수 플라이 아웃 처리.]의 2회이다. * 우승 당시 요일은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이 각각 6회[* 월: 2004, 2007, 2011, 2017, 2018, 2023/수: 1988, 1989, 1992, 1996, 2005, 2016/토: 1986, 1997, 2003, 2009, 2015, 2019], 금요일 4회[* 1998, 1999, 2008, 2013], 가장 적은 목요일이 3회[* 1983, 2012, 2021], 가장 많은 화요일, 일요일이 각각 8회[* 화:1982, 1984, 1993, 2000, 2010, 2014, 2020, 2022/일: 1987, 1990, 1991, 1994, 1995, 2001, 2002, 2006]로 기록되고 있다. * 우승을 확정한 경기에서 선발 등판하여 '''완투를 함으로써 헹가래 투수가 된 선수'''는 5명으로 1982년 박철순, 1984년 최동원, 1988년 문희수, 1997년 [[김상진(1977)|김상진]][* 최연소 완투이다. 1977년생이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완투승을 했으니.], 2003년의 정민태이다. * 헹가래 투수가 해당 연도 [[한국시리즈]]에서 MVP를 수상한 적은 2022년까지 10회 있었다[* 1988년 문희수, 1992년 박동희, 1994년 김용수, 1998년 정민태, 1999년 구대성, 2003년 정민태, 2004년 조용준, 2005년 오승환, 2011년 오승환, 2017년 양현종]. 반대로 한국시리즈 MVP를 타고도 헹가래 투수가 되지 못한 적은 1986년 김정수, 1990년 김용수, 1996년 이강철의 3명이다.[* 이 3명의 선수들이 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우승을 확정한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한 것. 즉, '''한국시리즈 MVP를 받은 투수들은 모두 우승을 확정짓는 경기에 등판한 것이다!'''] * 외국인 선수가 헹가래 투수가 된 사례가 몇 번 있는 일본프로야구와 달리 2022년 현재까지 KBO에서 외국인 선수가 헹가래 투수가 된 적이 없다. 아무래도 팀의 상징적인 투수나 마무리 투수는 보통 국내 선수가 맡기 때문이다. 허용 타자가 외국인 선수이였던 사례는 2006년 [[제이 데이비스|데이비스]]와 2019년 [[제리 샌즈|샌즈]]로 현재까지 총 두 번 있다. * 한편 포수가 한국시리즈 MVP에 등극한 것은 1991년의 [[장채근]]과 2016년, 2020년의 [[양의지]]로 2명인데, 이 두 선수 모두 해당 한국시리즈 헹가래 포수가 되었다. 투수와 포수를 제외한 나머지 야수들 중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고 동시에 한국시리즈 마지막 아웃카운트도 처리한 행운을 경험한 선수는 1993년의 [[이종범]]이 유일. 동시에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한국시리즈 마지막 아웃카운트 처리 경험과 MVP 수상 경험이 모두 있는 선수는 추가적으로 [[박진만]][* 2003년 유격수 앞 병살타 처리를 하여 우승을 확정지었고 2006년에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였다.]과 [[박한이]][* 2012년에 우승확정 포구, 2013년에 한국시리즈 MVP 수상(우승확정 포구는 옆에 있던 중견수 정형식이 기록), 2014년에 다시 우승확정 포구를 하며 아쉽게 기록을 놓쳤다.] 가 있다. ---- *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OB의 [[박철순]]이 삼성 [[배대웅]]의 크게 바운드된 타구를 처리하기 위해 점프를 하다가 땅바닥에 허리부터 떨어지며[* 당시 박철순은 진통제를 맞아가며 허리 부상을 참고 투구를 하고 있었다.] 큰 부상을 당하였으나, [[유지훤]]이 날렵하게 처리하며 [[박철순]]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한국시리즈 최초의 헹가래 투수가 되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 허리 부상 때문에 그 뒤로는 부상과 재활의 반복이었으니 헹가래 투수로 인한 대가는 너무 컸다. * [[1994년 한국시리즈]]의 헹가래 투수였던 [[김용수]]는, [[2023년 한국시리즈]] 이전까지 [[LG 트윈스]]의 [[1990년 한국시리즈|두 번의]] [[199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 MVP를 차지했던 경험이 있다.[*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까마득한 후배인 [[오지환]]이 MVP를 차지했다.] *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9회 말 2사 1,2루 8대 6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의 신동주가 평범한 내야 플라이를 쳤다. 타구를 처리하러 내려온 야수가 수비 좋기로 유명한 명품 유격수 [[박진만]]이기 때문에 이대로 우승을 확정짓나 싶었지만...박진만이 '''[[히 드랍 더 볼]]을 시전하며'''[* 사실 이것은 박진만 혼자만을 탓하기는 어려운 것이, 그 당시 [[2004년 한국시리즈/9차전|폭우 중에 경기를 강행]]하고 있던 중이라 공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는 박진만이 현대 유니폼을 입고 보여준 마지막 플레이였다.] 1점을 내 주게 되었다. 다행히도 다음 타자인 [[강동우]]를 1루수 땅볼로 처리하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박진만이 뜬공을 정상적으로 포구하였다면 박진만은 2년 연속으로 우승 확정 타구를 처리하게 되는 것이었고, 상술했던 최다 우승 확정 타구 처리 기록 역시 [[이숭용]]에서 [[박진만]]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이숭용의 우승 확정 타구 처리 기록 2번 중 1번이 2004년에 강동우의 1루수 땅볼 처리였다. 박진만이 타구를 잘 처리했으면 이숭용이 타구를 처리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 [[2017년 한국시리즈]]와 [[2018년 한국시리즈]]는 모두 각 팀을 대표하자 리그를 대표하는 [[양현종]]과 [[김광현]]이 나와서 두산을 상대로 마지막 1이닝을 잡고 세이브를 올렸다. 상술했듯 전문 선발투수가 올라와서 세이브를 올리는 상황은 의외로 매우 드물었는데, 2017년 이전까진 4번밖에 없었고, 마지막 1이닝만을 책임진 것은 2008년의 채병용이 유일했다. 그렇지만 2017년과 2018년은 모두 팀의 1선발이 나와서 마지막 1이닝만을 마무리짓고 세이브를 올림과 동시에 행가래 투수가 되었다. 이 두 명의 투수는 모두 시리즈가 끝나지 않는다면 다음 경기 선발이 유력했지만 1점 차에서 과감하게 투입하여 승리를 지켜냈다. * [[2018년 한국시리즈]]에선 행가래 투수는 아니지만 경기를 마무리짓기 위해 두산이 1점 차로 앞선 9회초에 1선발 [[조쉬 린드블럼]]을 등판시켜 1이닝을 책임지고 세이브를 올리려 하였다. 그러나 2사에서 [[최정]]에게 홈런을 맞으며 블론세이브를 기록하였고, 연장으로 접어든 경기에서 SK가 득점을 하자 이번엔 SK의 1선발인 [[김광현]]이 세이브를 위해 등판했고, 삼자범퇴로 이닝을 끝냄과 동시에 행가래 투수가 되었다. 즉, 한 경기에서 1점차 상황에서 세이브를 위해 각 팀의 1선발이 모두 등판하는 진기록이 나왔다. 참고로 두 선수는 각각 해당시즌 투수 중 용병 WAR 1위[* 투수 전체 WAR 1위], 토종 WAR 1위를 기록한, 말 그대로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였다. * [[2019년 한국시리즈]] 4차전 9회 말 9대 8로 앞서 있던 상황에서 마무리 투수 [[이용찬]][* 정규시즌에는 5선발이었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마무리 투수로 낙점되었다. 이미 1차전 9회 동점 상황에서 등판해 구원승을, 3차전 7회에 등판하여 3이닝 세이브를 기록하였다.]이 등판해 1사 만루 위기까지 몰리는 상황까지 몰리기도 했지만 다음 타자인 [[김규민(야구)|김규민]]을 투수 앞 땅볼로 아웃시켜 한숨을 돌리고 이어지는 타자인 [[서건창]]을 상대로 3루 땅볼을 유도하였다. 이렇게 무난히 헹가래 투수가 될 수 있었지만 그만 3루수 [[허경민]]이 실책을 하며 동점을 내 주고 말았다. 어찌저찌 다음 타자인 [[김하성]]을 잡아내며 끝내기 위기를 넘기고 이어지는 10회 초 공격에서 두산 타선이 2점을 뽑아내면서 다시 헹가래 투수가 될 기회가 생겼지만... 선두타자 [[이정후]]를 중견수 뜬공으로 돌려세운 후 [[김태형(1967)|김태형]]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하면서 마운드 방문 횟수 초과로 인해 자동 교체되는 해프닝이 발생하였다.[* KBO 리그 규칙 상 투수 교체를 제외한 단순한 코칭스태프의 마운드 방문은 1경기 2회로 제한된다. 이후에는 무조건 자동 교체다. 이 날 경기에서 두산은 이미 2회와 9회에 코칭스태프의 마운드 방문이 있었다. 2013년 한국시리즈 당시에도 두산이 그 규정을 놓쳐 준우승을 한 이력 때문인지 그 충격으로 마운드에 웬만하면 코치들이 적당히 올라가도록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2019년 역시 두산 팬들도 이용찬이 갑자기 바뀌면서 갸우뚱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투수가 [[배영수]]로 교체되었고,[* 당시 두산이 교체 가능했던 투수는 배영수, 권혁, 조쉬 린드블럼 3명 뿐이었는데, 권혁은 우타자 상대로 심각하게 부진하기 때문에 우타 거포인 [[박병호]]와 [[제리 샌즈]]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고, 린드블럼은 로테이션상 5차전 선발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등판 자체가 무리수였다. 참고로 린드블럼이 출장 가능 선수로 등록된 것은 코칭스태프의 커뮤니케이션 오류였다고 한다. 김태형 감독은 이영하를 출장 가능 선수에 넣고 린드블럼을 미출장 선수에 넣는 것을 생각했다고. 만약 실제로 그렇게 되었으면 추격조이자 노장 투수인 배영수 대신 강속구 투수이자 영건 에이스인 이영하가 등판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배영수가 박병호를 삼진으로, 샌즈를 투수 땅볼로 돌려세우며 헹가래 투수가 되는 영예를 거머쥐었다. 허경민의 실책과 김태형 감독의 미스가 2019년 한국시리즈의 헹가래 투수를 바꾼 사건이었다.[* 참고로 이용찬은 이미 [[2016년 한국시리즈]]에서 헹가래 투수가 된 적이 있었다. 2019년에도 헹가래 투수가 되었다면 선동열, 정민태, 오승환, 김광현에 이어 KBO리그 역대 5번째로 2번 이상 헹가래 투수가 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허경민의 실책은 또 다른 나비효과를 가져왔는데, 기존에 한국시리즈 MVP를 투표하였을 당시에는 박세혁이 MVP로 선정되었으나, 이 실책으로 인해 경기가 연장으로 가면서 MVP를 재투표하게 되었고 그 결과 MVP가 박세혁에서 오재일로 바뀌게 되었다. 헹가래 투수와 한국시리즈 MVP를 바꿔버린 의외로 중요했던 사건이었다. 게다가 최초의 부자 MVP 탄생도 무산시킨 셈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배영수가 [[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노히트노런을 달성함[* 이날 경기는 아쉽게도 무승부로 끝났었다. 배영수 다음으로 올라온 투수는 [[권오준]]이였다.]에도 승리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 아쉬운 마무리를 15년이 지나서야 매조지었다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 [[2020년 한국시리즈]]의 헹가래 투수 [[원종현]]은 사실 [[KBO 플레이오프/2015년#s-5.1|5년 전]], 선수가 아닌 경기 시구자로 나온 적이 있었다. 원종현 항목 보면 알겠지만 대장암 발병으로 인해 사실상 재활이냐 은퇴냐의 선수생활 기로에 놓여 있던 상황이었고, NC 구단이 시구자로서의 영예를 챙겨 준 것에 가까웠다. 그 이후 원종현은 항암치료와 재활에 성공하여 NC 다이노스의 든든한 마무리로, 결국은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의 영광을 마운드에서 누리게 되었다. [[인간승리]]의 한 예.[* 게다가 원종현은 암 투병 이전에도 팔꿈치 부상과 부진으로 은퇴 기로에 놓여있던 적도 있었다. NC 다이노스 창단 시 입단테스트에 자원하여 창단멤버로 들어올 당시 원종현은 "1군에서 단 한 번이라도 공을 던지고 은퇴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원종현 개인으로 보면 두 번이나 야구인생 부활에 성공한 셈.] * [[2022년 한국시리즈]]의 행가래 투수 [[김광현]]은 전날 선발투수로 등판해 84구를 던졌음에도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9회말 1사 상황에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여 150km의 강속구를 뿌리는 모습을 보이며 성공적으로 팀의 우승을 확정지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